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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보 및 소식/정보

[153오토테크] 세계 자동차 역사

by 153오토테크 김선택 2024. 8. 14.

 

 

~1800년

 

 기원전 5000년 경, 통나무를 가느다란 봉 모양으로 만들어 수레에 고정하고 양쪽에 얇게 자른 통나무 원판을 끼우는 방법이 나왔습니다. 최초의 바퀴입니다. 처음 등장한 바퀴는 매우 편리했지만 통나무 원판이 쉽게 부서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무 결에 따라 강도가 달라 굴리다 보면 약한 부분부터 서서히 망가졌습니다. 강도를 높이기 위해 널빤지 여러 장을 붙인 합판 바퀴가 나왔고, 땅에 닿는 바퀴 부분에 가죽을 입혀 충격을 줄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 경에 히타이트 족이 처음으로 바퀴살이 있는 바퀴를 발명해 전차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바퀴살을 쓰면 바퀴의 무게가 가벼워져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금속 재질의 바퀴를 쓴 전차가 등장했습니다. 바퀴의 다른 구성 요소인 축 또한 나무 대신 금속을 쓰며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또 축과 수레가 닿는 부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기름을 발랐습니다.

 통나무가 바퀴로, 바퀴가 수레로, 수레가 자동차로. 부산에 사는 선비가 한양에 가기 위해서는 보름을 걸어야 했는데, 천재적인 선각자와 현명한 수재와 전쟁으로 과학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끝에 이제는 6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태엽 자동차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엽 자동차를 고안합니다. 그 후 1698년 토마스 서베리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1712년과 1765년에 토마스 뉴커먼, 제임스 와트가 각각 뉴커먼식, 와트식 증기기관을 발명합니다.

 

퀴뇨, 증기 자동차

 

그 후 1769년, 니콜라 조세프 퀴뇨가 자동차의 시조인 세 바퀴 증기 자동차를 만들며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의 막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1886년~1899년, 베테랑기

니콜라우스 오토

 

 교통이 발전하며 마차가 단종되고 자동차가 탄생했습니다. 1861년 니콜라우스 오토가 효율적인 4행정 내연기관을 처음 만든 뒤, 자동차를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었습니다.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그러다 1886년 1월, 카를 벤츠가 내연기관 3륜 자동차 발명으로 특허 37435호 등록증을 받았습니다. 카를 벤츠의 발명품에는 특허를 받은 자동차라는 뜻에서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카를 벤츠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53오토테크] 최초의 최초의 최초의, 카를 벤츠와 베르타 벤츠

카를 벤츠  카를 벤츠는 1844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도시 카를스루(Karlsruhe)에서 철도 기관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두 살이 되던 해, 폐렴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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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벤츠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연구하던 고틀립 다임러도 빌헬름 마이바흐와 함께 설계한 엔진으로 자동차를 만들어냈습니다. 내연기관의 아버지인 니콜라우스 오토와 함께 일했던 다임러는 1885년에 엔진 달린 자전거를, 1886년에 세계 최초의 네 바퀴 자동차를 완성했습니다. 이어 1889년에는 변속기, 현대적 조향기구 같은 기술을 갖추며 마차의 틀에서 벗어난 첫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다임러는 자동차 개발 붐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파나르 & 르바소와 푸조가 다임러의 엔진으로 자동차를 만들었고 영국, 미국, 오스트리아에도 다임러의 기술을 쓴 자동차 회사가 생겼습니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1900년대 초까지 자동차는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명 ‘엔진 실은 마차’로 여겨지면서 말입니다. 마차에 지붕을 덮고 문을 달아 근대적인 자동차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자동차에는 전진만 가능한 이동수단이라는 결적적인 기능적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운전수 옆에는 조수가 탑승했습니다. 주차나 후진을 위해 차를 밀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1911년 카레이서 레이 하룬이 자동차에 후사경을 달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화장대 앞에서 뒷머리를 손질하는 데에서 얻은 아이디어였습니다.

 

1900년~1918년, 브레스기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1900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브레스기는 자동차 구조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표준화된 자동차 구조는 파나르 르바소의 ‘시스템 파나르’였습니다. 후륜구동 방식의 기틀이 되는 시스템 파나르는 차체 앞쪽의 엔진에서 시작해 동력 전달을 조절하는 클러치와 변속기, 프로펠러 샤프트와 차동장치, 양쪽 뒷바퀴까지 동력이 이어지는 구조였습니다. 원형 스티어링 휠로 앞바퀴의 각도를 조절해 방향을 바꾸는 구조를 포함하여 네 바퀴가 달린 내연기관 차에서 이 같은 후륜구동 배치가 쓰인 것은 파나르 & 르바소가 처음이었습니다.

 전통적인 4륜 대형 마차 형태의 탈 것은 빠르게 사라져갔고, 소형 마차 역시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 이 시기 동안, 수백 개의 작은 자동차 제작 회사가 등장해 경쟁하면서 자동차 기술 개발 역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전기 자동 시동기, 독립식 현가장치, 4륜 브레이크 등이 이 시기에 개발되었습니다. 판상 스프링이 현가장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프레임 재질은 나무에서 L형강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변속기와 연료 흡입 조절판을 적용해 다양한 속도로 주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미리 결정된 고정 속도로 주행하는 자동차들이 이후에도 계속 제작되었기 때문에 주요 기술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브레스기에는 헨리 포드로 인해 자동차의 대중화, ‘마이카 시대’가 열렸습니다. 부품 표준화를 통해 자동차 대량생산의 길이 열리고, 고장나거나 부서진 부품을 교체ㆍ수리하는 개념이 생겼던 것은 올즈모빌의 공로입니다. 그 덕분에 올즈모빌 커브드 대시는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ㆍ판매된 자동차로 이름을 올렸지만 포드가 개발한 새로운 생산 기법으로 인해 기록은 오래 가지 못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습니다. 포드가 일관 생산 공정으로 모델T를 쏟아내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포드, 모델 T

 

 모델 T 생산이 시작된 1908년만 해도 포드의 생산 방식은 노동자의 손에 의존하던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10년 새로 만든 하이랜드 파크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며 공정이 체계화되었고, 1913년에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일관 생산공정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전까지 모델 T 한 대를 조립하는 데에 12.5시간이 걸렸는데, 1914년에는 1.5시간으로, 1925년에는 하루 9,000~10,000대, 연간 2,000,000대를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1910년에 대당 900달러였던 값도 1925년에는 260달러까지 낮아졌습니다. 포드가 기틀을 다진 자동차 생산방식은 발전과 개선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포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53오토테크] 기계를 사랑한 고독한 소년,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

기계를 사랑한 어린 소년  헨리 포드(Henry Ford)는 1863년 7월 30일, 미국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서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농촌 디어번에서 윌리엄 포드와 메리 리토갓 오언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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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1929년, 빈티지기

오스틴, 세븐

 

 1919년부터 1929년까지, 빈티지기에 제작된 자동차들은 엔진이 자동차 앞부분에 있고 지붕을 가지고 있었으며 표준화된 제어 시스템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내연기관 엔진의 개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고급 차종에서는 다중 밸브와 오버헤드 캠 엔진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시기, 포드의 모델 T는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었지만 획일화된 제품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흥미를 잃었습니다. 보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니 판매증가율이 뚝 떨어졌고, 일관 생산공정을 도입하는 업체가 늘어나며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모델 T 생산이 중단된 1927년에는 경쟁사 제너럴 모터스의 브랜드 중 하나인 쉐보레에게 시장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마이바흐, 체펠린 DS 7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제너럴 모터스의 경영자가 된 알페레드 슬론은 자동차 회사의 근본을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수익을 내는 데에 있다’는 것이 슬론의 철학이었습니다. 슬론이 주도한 조직개편과 비용절감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빈 카운터(Bean Counter)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철학에서 탄생한 것이 ‘계획적 전부화’였습니다. 소비자가 새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제품을 낡아보이게 만드는 새 제품을 내놓는 제품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소비자의 부의 정도, 또 그에 따른 취향과 기능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제품 라인을 구성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수 많은 수공업 자동차 업체를 흡수한 것이 기반이 되어 슬론은 GM을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자리에 올려놓았고 자동차 산업의 중심을 제품에서 마케팅으로 옮겨놓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30년~1946년, 전쟁 이전기

폭스바겐, 비틀

 

 전쟁 이전기는 대공황이 일어난 1930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의 복구시기인 1946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대공황으로 인해 자동차 제조 회사의 수가 점차 감소 추세에 있었고,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며 자동차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기였습니다. 1930년대~1940년대 초에는 차체의 유선화가 이루어져 차체의 높이가 낮아지고 길이가 길어졌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시트로엥 사에서 만든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으로 전륜구동 방식이 되입되었습니다.

 

시트로엥, 트락숀 아방

 

 제2차 세계 대전은 세계 각국의 군대가 기계화, 차량화에 박차를 가했던 전쟁이기 때문에 자동차 디자인은 정체되었지만 기술이 활발히 발전했습니다. 전쟁에 사용된 차량들은 전후 각국의 자동차 기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1946년~1974년, 전쟁 이후기

포드, GPW

 

 1940년대 초반, 제2차 세계대전과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민수용 차량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동안 위척되었던 자동차 산업이 다시 활성화되는 추세를 보이다, 고압축 V8 엔진을 장착한 모델들을 발표했습니다.

 

국제차량제작, 시발

 

 1950년대에는 전 세계로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엔진의 힘과 주행 속도가 크게 증가하여 300마력을 달성한 자동차도 양산되었고, 외형도 점점 우아하게 바뀌어갔습니다. 전쟁 이후 피폐해진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 유럽에서는 이 시기부터 소형 자동차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알렉 이시고니스가 개발한 미니와 피아트 500이 유럽을 휩쓸었고, 일본에서는 경차가 보급되었습니다. 히틀러가 만들어낸 폭스바겐의 비틀은 독일의 국민차임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아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국내에서도 미군의 장비나 드럼통을 뜯어서 만든 최초의 독자 모델, 국제차량제작 시발이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재규어 E-타입

 

 1960년대에 들어서는 자동차 시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1950년대에 크게 유행한 고급 차량들의 매력과 만듦새가 발전을 거듭하여 1960년대는 스포츠카의 황금기로 손꼽히게 됩니다. 안전과 연비 때문에 출력이 줄고 구조가 복잡해진 이후 시대에 반해 차량을 더 가볍고 강하게 만들 수 있었고, 아름다운 유선형 디자인이 주류이던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명차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한 일본이 6·25전쟁 이후 경쟁력있는 자동차 생산국으로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됩니다. 이 시기 BMC와 같은 거대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수입과 배지 엔지니어링 방식이 미국과 영국에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유행의 결과로 페라리, 마세라티, 란차와 같이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들일 거대 기업에 흡수되고 맙니다.

 

포드, 머스탱

 

 1960년대 미국에서는 포니카와 머슬카의 등장으로 자동차 성능이 큰 이슈가 되고 있었습니다. 1964년 포드 머스탱이 큰 인기를 끌었고, 1976년에는 쉐보레가 카마로를 내놓아 머스탱과 경쟁했습니다. 1969년 포드 자동차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랐으나 1973년 석유 파동이 일어나며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규제, 뒤처진 기술개발 등이 원인이 된 것입니다. 유럽과 일본에서 수입된 BMW, 닛산, 토요타의 소형 자동차들이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큰 배기량의 자동차들보다도 더 좋은 성능을 발휘하며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잠식해 나갔습니다.

 

1975년~현재, 현대기

제네시스, 제네시스 X 컨버터블

 

 1974년 세계 자동차 보유대수가 3억대를 돌파하며 현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현대기의 자동차들은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과거의 자동차들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기는 표준화, 플랫폼 공유, CAD를 이용한 설계가 특징입니다.

 

테슬라, 사이버 트럭

 

  미래에 자동차가 나아가야할 길은 자율주행, 완전 전동화,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 가벼운 고용량 배터리, 후드 에어백 등 보행자 안전 장치, 운전자 페달 오인 방지 장치, 차대 공용화, 비행 차량, 친환경 소재 차체, 수소와 전기 충전소 인프라 확장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점차 미래지향적 디자인으로 많은 차를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153오토테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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